최초 개발자

인류사상 최초 종이는 중국 사용

이모이모 2023. 10. 23. 12:47

시대명

로마시대에서 산업혁명까지

 

  • 연도 589
  • 저자 배리 스톤

 

◈화장지의 출현 :

인류사상 최초의 종이는 서기전 50~40년대의 전한(前漢)시대에 중국에서 처음 발명되었다고 하며

시대인 서기 105년경 중국의 채윤에 의해서였다. 그후 중국의 종이를 만드는 기술이 유럽으로 건너간 것은 무려 천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였다. 세계에서 최초로 종이로 뒤를 닦은 사람도 역시 중국인이었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과 교역한 아랍상인의 기록을 보면그들은 더러워서 용변후에 물로 씻지 않고 중국 종이로 닦고 있었다' 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은 문자가 쓰인종이로는 결코 뒤를 닦지 않았다. 오늘날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1 정도가 용변후의 뒷처리로 종이를 사용한다. 지금 쓰이는 것과 같은 화장지는 수세식 변기의 보급과 동시에 사용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 종이제조기술이 도입된 시기는 견해의 차이는 있지만 대략 4~7세기 초로 보고 있으며, 신라시대의 종이로 판명된 범한다라니 1매가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종이이다.

 

우리나라 종이는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에 고유한 종이로서의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라 시대에는 저지(닥나무종이)가 크게 발달하였는데 중국에서는 신라의 저지를 백추지(白硾紙), 계림지(鷄林紙)․견지(繭紙)․만지(蠻紙)라 불렀다. 이는 다듬이질이 잘되어 섬유질이 희고 고르고 질겼으며 종이의 질이 누에고치처럼 부드럽고 깨끗한데서 나온 이름이다.

 

이러한 제지기술의 전통이 고려시대에 계승되어 대량생산이 가능했기 때문에 11세기 후반 이후부터는 우리나라의 종이를 중국에 수출하게 되었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닥나무의 재배를 장려하고, 지소(紙所)라는 기관을 설치하였으며, 민간제지업도 장려하여 닥을 원료로 한 제지기술은 더욱 발전하였다.

 

특히 견지는 고려시대에 와서 더욱 그 질이 세련되어 중국의 역대 제왕들은 물론 시인과 묵객들이 고려 종이를 애용하였다. 고려시대에 만든 종이는 백추지(견지), 불경지(佛經紙, 장경(藏經)과 불서(佛書)를 찍어내기 위한 종이), 청지(靑紙, 화지나 책의 표지로 쓰임)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제지공장인 조지소(造紙所)를 설치하고, 일본 닥의 품종을 도입하여 재배하는 등 닥의 다량 생산과 품질개량도 도모하였다. 조선 초에 조지소에서 만들어진 종이로는 표전지(表箋紙, 글을 쓰는 종이), 자문지(咨文紙, 문서용 종이), 고정지(藁精紙, 귀리나 보리 짚

 

◈중국인들이 개인의 위생을 개혁하다.

기록에 의하면 최초로 화장지가 사용된 것은 6세기 중국에서 였으며 정부관리이자 학자인 안지추가 철학 관련 글이 인쇄된 종이로 엉덩이를 닦지 말라고 훈계를 했다고 한다. 14세기 말 다른 지역에서 물을 사용하고

있을 때 중국에서는 연간 70만 개의 향기로운 화장지가 황실에서 쓰이기 위해 생산되고 있었다.

 

1857년에 뉴욕 시에서 조지프 게이예티가 최초로 상업적으로 포장된 촉촉한 화장지를 발명하기 전에는 사람들의 씻는 방법이 사는 지역과 생활 수준, 사회적 지위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평등주의인 하와이에서는 코코넛 껍질이 널리 사용되었고 프랑스 귀족들 사이에서는 끈과 삼이 인기였다. 고대 로마의 상류사회에서는 장미 향수와 모직을 혼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식민지 시대의 미국에서는 옥수수자루와 오래된 책을 사용했으며, 17세기와 18세기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뱃사람들은 썩 내켜 하지는 않았지만 종종 오래된 닻줄의 끝을 사용하기도 했다.


최초로 화장지가 두루마리로 제작된 것은 1890년 미국의 스코트사(社)에 의해서였다. 1935년에는 노던 휴지 회사가 '찢어지지 않는' 화장지를 광고하기 시작했고, 1942년에는 보다 부드러운 두 겹의 화장지가 첫 선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