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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의 창설자 알프레드 노벨

이모이모 2023. 9. 11. 16:51

▣▣노벨상의 창설자  알프레드 노벨

183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출생한 후 4세 때 핀란드로 이주하였다. 8세 때는 다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하고 이곳에서 초등교육을 받았다. 1850년 미국으로 유학하여 4년 동안 기계공학을 배웠다. 크림전쟁 후 스웨덴에서 폭약의 제조와 그 응용에 종사하고 있던 아버지의 사업을 도와 폭약의 개량에 몰두하였다. 1863년 소브레로가 발명한 니트로글리세린과 중국에서 발명한 흑색화약을 혼합한 폭약을 발명하고, 그 이듬해 뇌홍(雷汞)을 기폭제로 사용하는 방법을 고안하여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이의 공업화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1864년 9월 공장이 폭파되어 동생과 조수 4명이 희생되었다.

여기서 그는 니트로글리세린이 바로 액체라는 점에 위험의 원인이 있다고 인정하고, 1866년 이것을 규조토(硅藻土)에 스며들게 하여 안전하게 만든 고형(固型) 폭약을 완성하여 이것에 '다이너마이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 1887년 니트로글리세린·콜로디온면(綿)·장뇌(樟腦)의 혼합물을 주체로 하는 혼합 무연화약(無煙火藥)을 완성하였다. 노벨의 공장은 스웨덴·독일·영국 등에서 연이어 건설되어, 1886년 세계 최초의 국제적인 회사‘노벨다이너마이트트러스트사’가 창설되기도 하였다.

그동안 그의 형인 로베르트와 루트비히는 카스피해(海)의 서안에 있는 바쿠의 유전개발에 성공하여 대규모의 정유소를 건설하고 세계 최초의 유조선 조로아스타호(1877년 취항)를 사용하여 세계 최초의 파이프라인(1876)을 채용함으로써 노벨가(家)는 유럽 최대의 부호가 되었다. 노벨은 평생 결혼하지 않았으며 자식도 없었다. 1895년 11월 자신의 재산을 은행 기금으로 예치토록 하는 유서를 작성하였으며 1896년 12월 10일 63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과학의 진보와 세계의 평화를 염원한 그의 유언에 따라 스웨덴 과학아카데미에 기부한 유산을 기금으로 1901년 이래로 세계의 평화, 문학, 물리, 화학, 생리·의학, 경제 분야에 노벨상 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부자가 된 노벨, 그러나...
 노벨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는 전 세계로 팔려 나갔고, 노벨은 순식간에 엄청나게 큰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부자가 된 노벨에게 큰 고민이 생겼다. 원래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이유는 사람들이 더욱 편하게 잘 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을 우해 길을 뚫고, 공장을 짓고, 광산에서 큰 바위도 쉽게 폭파하여 광부들이 편하게 일하도록 하려는 것 이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사람들은 전쟁을 벌이면서 이 다이너마이트로 적군의 기지나 공장, 다리 등을 폭파하고 더 많은 적군을 죽이는데 이용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발명한 화약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다치고 죽는 것이 가슴 아팠던 노벨은 전쟁이 아니라 세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큰 업적을 쌓은 사람들에게 큰 상을 주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내놓기로 하였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상이 바로 '노벨상'인 것이다. 1901년 노벨상이 만들어진 이후 많은 훌륭한 과학자와 문학가, 종교인, 정치가 등이 이 상을 받았고 이 상은 지금도 인류의 평화와 학문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출생 1833.10.21~ 사망 1896.12.10

1833 10월 21일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출생.
1837 가족과 함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
1851 미국으로 유학. 기계공학과 화학을 공부.
1863 소브레로가 발명한 니트로글리세린과 중국에서 온 흑색화약을 혼합해 폭약을 발명.
1867 니트로글리세린을 연구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 특허를 얻음.
1875 무연화약 발리스타이트 발명.
1886 세계 최초의 국제적인 회사 '노벨다이너마이트트러스트'가 창설.
1896 12월 10일 스웨덴 과학 아카데미에 유산을 기부하고 사망.
1901 노벨의 유산으로 노벨상 제도가 만들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