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충남 부여군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배우로 데뷔하기 전 인생 초반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1989년 스타의 첫사랑'회색빛 젊음의 연가' 편을 통해 태민영 자신은 사춘기 시절을 "집을 떠나 어디로든 숨어버리고 싶다는 혼잣말과 한숨을 삼킬 정도로 답답했다"며 방황하던 때라고 평했다.
그는 해군 제대 후 1976년 중앙국립극단 단원으로 입단하여 연기에 입문했고, 1978년 <천사여 고향을 보라>를 시초로 주연을 처음 맡아 연극계의 샛별이 됐다. 그러나 연극만 나오기에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데다 1980년 국립극단 측의 '타 극단의 연극 출연 금지' 등 폐쇄적인 운영에 불만을 품고 자진 탈퇴한 후, MBC 수요연속극 <청춘의 초상>에서 대학생 역으로 출연해 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1982년 KBS2 일일연속극 <보통사람들>에서 인기 여배우 유지인의 상대역을 맡아 KBS와 인연을 맺었으며, 1984년 특집드라마 <마돈나여, 광야에서 별을 노래하라>에서 윤동주 시인 역을 맡아 큰 호평을 받았다.
1990년대 들어 드라마 환경의 변화로 사극과 악극, 단막극에 집중하며 1997년 KBS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정종 역으로 열연했지만, 생계는 갈수록 어려워져 술장사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정황상 사업을 하다가 손해를 봐 생활고를 겪은 듯 하다. 태민영의 유작인 '태조 왕건'에서 박술희를 맡은 배우 김학철의 예를 보면, 대하드라마는 회수가 많아서 조연이라도 공무원처럼 매회 출연하다보면 출연료가 차곡차곡 쌓여서 김학철은 종방 무렵에 집도 사고 생활고도 덜었다고 한다. 게다가 태민영은 당시 김학철에 비하면 인지도가 있던 배우여서 여러 드라마나 영화에도 자주 얼굴을 비추었고, 그 직전 출연한 용의 눈물에서도 정종 이방과를 맡아 비중도 있고 나름 중요한 역이라 출연료는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2000년 6월 말 간암 판정을 받은 후, 심한 감기 증세에도 운동도 할 정도로 일상에는 지장이 없었으며, 술과 담배를 끊고 간에 좋은 여러 음식을 구해서 먹었지만 9월 미국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후 가슴에 통증이 생겨 병마는 날로 심해져 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태조 왕건>의 신강 역에서 도중 하차한 채 입/퇴원을 반복하다 11월 7일 0시 30분 서울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에서 지병인 간암으로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