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경기도 김포군 대곶면 율생리에서 태어나 고교 시절 연극부 활동을 했으나, 집안 사정으로 동국대학교 농업학과를 마치고 2년 8개월 동안 공무원 생활을 했다. 평소 연기를 하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공무원을 그만두고 김수용 감독을 찾아가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했다가 문전박대를 당했으나, 70여일을 매달려서 사정한 끝에 1967년 <맨발의 영광>에 캐스팅되면서 데뷔했다. 1969년 TBC 8기 공채 탤런트로 입사한 후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밀어 1973년 <어머니>를 시초로 주연을 처음 맡았고,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모래시계>, <첫사랑> 등지의 숱한 드라마에 나오며 순박하고 서민적인 아버지 등 친근한 이미지의 배역들을 많이 맡았으며, 특히 장기간 방영한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에서 맡은 '박달재'[2]는 전원일기의 최불암과 동급. 가끔 사극에서는 원로 내시 혹은 하인 역할도 잘 어울렸던 배우이나 전체적으로 서민 연기에 능했고, 이러한 연기로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연기 생활 동안 몸을 아끼지 않고 불철주야 힘쓴 탓에 1994년에 뇌경색 판정을 받았고, 2005년에 이 증세로 쓰러져 걷기 힘들거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으나, 그 뒤에 철저한 재활훈련과 건강 관리에 힘쓰면서도 영화, 연극 등지에 간간이 나와 연기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2009년에 '장애인방송연기자협회'를 세워 장애인 배우들을 가르치는 한편, 창신대학 연극영화과 명예학과장도 맡아 후학 양성에 전념해왔다.
2010년에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재익 감독의 선교영화 <독 짓는 늙은이>에 출연해서 촬영에 임하기 시작했고, 촬영 초반에 진단 결과 방광암 3기가 발견되어 입원하면서도 출연을 멈추지 않았다.
촬영을 마친 지 3개월 후인 2011년 4월 25일, 동국대학교일산병원 병상에서 결국 눈을 감았다. 또한, 투병 중에도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에 자신의 신앙기를 손수 연재하기도 하였으며, 그의 시신은 서울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된 후 빈소가 차려져 이준익 감독과 정진영 등 수많은 연예인들이 조문을 왔다. 28일에는 발인 후 여의도 KBS 본사를 한 바퀴 돌고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되어 유해는 파주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에 모셔졌다.2011년 4월 25일 (향년 72세)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