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머리를 붙잡아 고정시킨 뒤 한발을 들고, 몸을 뒤로 젖혔다가 들이받기 때문에 외다리 박치기라 부르기도 한다.
체중이 잔뜩 실린 박치기의 파괴력 덕에 원폭박치기란 별칭이 붙었다.경기 중 들어가는 원폭 박치기의 위상은 무시무시해서 안토니오 이노키와 자이언트 바바가 휘청거리며 무릎을 꿇는 셀링을 보여줄 정도였는데, 세번째까지는 버티더라도 계속해서 들어가는 박치기에 점점 무릎을 꿇는 식이었다. 그리고 안토니오 이노키를 코너로 몰아넣은 뒤에 그의 머리를 양 손으로 움켜쥔 다음, 작정하고 연타로 때려박는 살벌한 모습도 보였다.
지금도 일본의 서브컬쳐에서도 박치기같은 기술이 나오면 대개 '원폭박치기' 로 부르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당연히 김일의 패러디이기도 하다. 일례로 KOF 시리즈에서 야마자키 류지가 사용하는 '폭탄 박치기'가 있다. 실제로 일본어로 박치기가 '라는 단어가 있음에도 폭탄 박치 김일라는 표기를 사용한다.
1989년 고혈압으로 쓰러진 이후 일본에서 투병생활을 했는데, 그런 연유로 1998년 9월 27일자 KBS2 <영상기록 병원24시> 등지의 TV 프로그램에서 그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몇 번 나왔다. 젊었을 때부터 워낙 혹독하게 훈련했는데 야구방망이로 맞고, 나무기둥이나 콘크리트벽 또는 골프 드라이버로도 단련하는 등 단단한 물체에다 대고 허구한 날 연습한 나머지 두개골에 상처가 남는 등 큰 후유증을 입었고, 거동도 많이 불편했다고 한다.
1994년 1월 귀국 이래 서울 을지병원으로 옮겨 투병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2000년 3월 25일, 마침내 장충체육관에서 그토록 바라던 국내 은퇴식을 치렀고, 당시 박지원 문광부장관으로부터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여받았다. 2003년에는 고향 거금도에 공적비가 제막됐다.
은퇴 후 건강과 재산을 잃어가는 와중에 사기도 몇 번 당할 뻔했으나, 오죽하면 자기같이 가난한 사람 털어 먹겠느냐고 넘어갔다. 국내에 처음으로 WWE RAW 투어가 왔을 때 특별 게스트로 관중석에 앉아 시합을 관람했는데, 릭 플레어가 허리를 숙여 인사하면서 김일에게 예를 갖췄다.
2006년 2월에는 41년 전 '프로레슬링은 쇼다' 사건 이후 완전히 갈라섰던 전 프로레슬러 장영철을 직접 찾아가 그간에 쌓인 넋두리를 풀고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두 사람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장영철은 그 해 8월, 김일은 두 달 후 10월 26일에 만성신부전증 및 심장혈관 이상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인해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박치기왕’ 김일
장례는 체육인장으로 치러져 유해는 고향인 전남 고흥군 금산면 생가 옆에 안장 됐으나, 2020년 5월에는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유공자 묘역에 이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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