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957년 5월 28일 부산광역시에서 무녀독남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일생 자체가 불행의 극치였는데 그의 어머니는 미혼모 였으며 어린 김우수를 키울 자신이 없어 2살때 버려진 이후 7살 때 보육원에 들어 갔으나 12살 때 가출, 초등학교도 졸업을 못한 채 노숙과 구걸 등을 하며 거리를 전전했다. 2005년에는 자살을 하려고 불을 질렀다가 실패하고, 방화 혐의로 구속되어 교도소에서 1년 6개월간 복역하게 된다. 거기서 어린이재단에서 발행하는 <사과나무>를 보게 되고, 이들을 돕기로 결심하고 출소 후 은평구 갈현동에 있는 한 중국집에서 배달일을 하게 된다.
특이사항으로 평생을 걸쳐 모태솔로였다고. 하지만 결혼할 생각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닌 모양. 선을 보러 이리저리 쫓아다녔는데, 고아 출신에 형제까지 없어서인지 줄줄이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결혼할 생각도 사라졌다고 한다.
월급 70만원 중 25만원을 자신이 묵고 있던 고시원 월세로 내고, 매달 5~10만원씩을 어린이재단에 정기적으로 후원해왔으며, 5년간 총 다섯 명의 아이를 후원했다. 자신이 사망하면 받게 될 4천만원의 종신보험도 어린이재단 앞으로 해놓고, 장기기증 서약까지 했다. 이런 선행이 알려진 덕분에 2009년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청와대 오찬에 초대받아 참석하기도 했다
이런 좋은 일을 하며 살던 그였지만 하늘이 무심하게도 2011년 9월 25일, 여느 날과 다름없이 평범하게 음식 배달을 나가다, 서울 강남구의 한 교차로에서 맞은편에서 오던 아반떼 승용차와 정면 추돌하는 사고로 사망한다. 그의 나이 향년 54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