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에 전두환이 쿠데타로 집권하면서 10개월이나 방송에 못 나왔다. 전두환이 직접 못 나오게 한 것은 아니고, 전두환과 매우 닮았기 때문에 방송인들이 알아서 정권에게 기었다.나중에 박용식이 전두환과 직접 만나서 얘기했고, 전두환 본인은 전혀 몰랐던 부분으로 대신 사과했다. 이순자는 청와대에 투서했으면 당장 해결해줬을 거라면서 안타까워했다. 참고로 당시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도 대머리인 고바우 영감이 새해 인사를 하는 것이 찍혀서 못 나간 적이 있었고, 코미디언 이주일도 한동한 방송출연을 정지당했으며 김수정 화백 만화도 주인공이 대머리가 되는 장면 때문에 국보위에 의해 연재가 중단되었다. 더구나 이순자라는 이름 석 자도 쓰지 못하도록 하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아주 난리가 났다.
정확히는 KBS의 낙하산 사장 이원홍의 과잉 충성이었다. 당시 KBS는 MBC와 함께 치열한 전두환 충성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주일한국공보관장, 청와대 민원수석비서관을 거쳐 신군부 연줄로 KBS사장이 된 이원홍은 전두환이 쇼프로그램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새로 쇼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직접 PD처럼 뛰면서 현장을 지휘하였다. 그가 부임 직후 <민족중흥의 대단치>라는 쇼가 나가게 되었는데 여기서 바로 '박용식' 씨가 출연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쇼의 사회가 남철, 남성남 콤비였는데 박 씨를 보자마자 절을 하였다. 그날도 이 사장은 현장에 나와 있었는데 카메라로 보니 박 씨가 전두환과 똑같이 생겨서 깜짝 놀랐다. 이에 이 사장은 카메라를 빼서 멀리 잡으라고 고함을 쳤고, 이 소동으로 인해 전 간부들은 암암리에 박 씨의 TV 출연금지라는 메세지로 인식하였다.
이에 그는 이원홍 사장까지 찾아가며 30분이나 읍소한 결과 1980년 <TV문학관> '신부들' 편에서 크레딧에서 누락된 채 나오기 시작하면서 부분적으로 출연금지가 해제되어 모자나 가발을 써 가며 단역 출연을 했지만 어차피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 사극이야 고증 등을 위해 그렇다 쳐도 어린이 프로 같은 데서는 두꺼운 가발을 쓴 높으신 분이나 중절모를 쓴 제비족 내지 사기꾼으로 나오기도 했고, 사극에선 장수나 대신, 양반 같은 조연급 인물 등을 맡기도 했으나 이미지는 둘째치고 대머리를 가리려는 눈물겨운 노력의 여파였다.
5공화국 때 대머리를 보인 건 1984년 <TV문학관> 저승새 및 두 나그네 편에서 스님으로 나올 때이고, 1986년 만다라 편에서는 주인공의 스승으로 타락한 주인공을 혼내는 단역인데 당연히 대머리를 그대로 보였다. 같은 해 <원효대사>에서 자장율사 역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출연 기회를 잃은 그는 10여년 간 방앗간을 차려 기름을 팔아 생계를 근근이 이어나갔다. 이때의 경험으로 절약과 저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깨달았고, 그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서 죽는 그날까지 옛 방앗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집을 짓고 살았다.
2013. 8월. 2.일 폐혈증으로 사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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