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공식 은퇴 공연 기념 음반
고복수는 1934년 콜럼비아레코드 콩쿠르 3등으로 당선되면서 대중음악계에 공식 데뷔했다. 그해 6월 오케레코드에서 데뷔곡 <타향살이>와 <이원애곡>을 발표해 오케레코드 간판급 가수로 활동했으나, 운영자 이철과의 불화로 1940년 오케레코드를 나와 무대 공연만 했다.
한동안 부인 황금심과 함께 노래하며 인기를 얻었지만, 1950년대 중반 이후 악극의 퇴조로 공연 환경에 많은 변화가 생기자 공식 은퇴를 결심했다. 1957년 8월 서울에서 시작한 고복수 은퇴 기념 공연은 지방 순회공연으로 몇 달 간 이어졌다. 한국 대중음악 최초의 대규모 공식 은퇴 공연이었다. 특히 공연 기획 및 진행 과정에서 가수의 이익을 대변하는 결사체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그해 9월 대한레코드가수협회(회장 남인수)가 발족한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반야월 작사에 한복남이 작곡한 <노래하는 부부>는 이 공연이 끝난 뒤 고복수의 은퇴를 기념해 만든 곡으로, 고복수·황금심 부부가 대화하듯 주고받는 형식이다. 반야월이 구성하고 나화랑이 편곡한 <고복수 은퇴공연 노래>는 고복수의 대표작 <짝사랑>(1937), <타향살이>와 <사막의 한>(1935)을 1절씩만 불러 메들리로 엮고 노래 앞에 대사를 넣었다. 이는 1930~1940년대에 제작된 이른바 ‘걸작집’ 음반에서 주로 사용한 방식이다. 고복수도 1938년에 6곡을 수록한 「고복수 걸작집」을 오케레코드에서 발표했다. SP 음반은 재생 시간이 3분에서 3분 30초 정도이므로 한 면에는 많아야 3곡까지만 수록할 수 있었다. 1972년 2월, 고복수는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는 앞서 세상을 떠난 동료 남인수, 이난영과 마찬가지로 한국연예협회장으로 치러졌다.
'연애인 세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우 박주아 별세 (0) | 2022.12.27 |
---|---|
철가방 김우수 별세 (0) | 2022.12.27 |
배우 박용식 별세 (0) | 2022.12.24 |
배우 나시찬 별세 (0) | 2022.12.22 |
가수 하춘화 어릴때 (0) | 2022.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