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 세개 89

박정희 대통령 생가

1963년 제5대부터 제9대에 이르기까지 5대에 걸쳐 대통령을 역임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다. 이 곳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1917년 11월 14일 박성빈 공과 백남이 여사의 5남 2녀중 막내로 태어나서 구미초등학교와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당시에 쓰던 책상, 책꽂이, 호롱불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생가에는 753.7㎡(228평)의 대지에 생가, 안채, 분향소, 관리사 등 4동의 건물이 있다. 1964년 초가인 안채건물을 현재의 모습으로 개축하여 주거 및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으며, 1979년 박대통령 서거 직후부터 응접실을 분향소로 이용하고 있다. 생가 건물 중 초가는 원상태로 보존되고 있으며 1993년 2월 25일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유족과 구미시에서 공동 관리하고 ..

유관순 열사

1902년 12월 16일, 충청남도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지금의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서 아버지 유중권(柳重權)과 어머니 이소제(李少悌) 사이의 3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유관순의 집안은 개신교 신자였던 할아버지 유윤기(柳閏基)와 숙부 유중무(柳重武)로 인해 일찍이 개신교 집안이 되었고, 유관순도 자연스럽게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은 사회개혁, 부녀자 계몽, 교육사업 등을 통해 자주독립의 길을 찾고자 흥호학교(興湖學校) 운영에 가담하여 인재 배출을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이며, 자녀 교육에도 적극적이었다. 이러한 노력 때문에 큰 아들 유우석(柳愚錫)은 공주 영명학교에서, 둘째 딸인 유관순은 서울 이화학당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유관순의 고향은 철도가 부설되기 전 ..

금동사리 항아리

전북 익산시 미륵사 터 석탑(국보 11호)에서 발견된 금동사리항아리(높이 13cm) 안에 숨어 있던 작은 금제사리항아리(높이 5.9cm)가 공개됐다. 작은 금제사리항아리 안에서는 사리 12과(顆·사리를 세는 단위)도 나왔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일 “몸체를 위아래로 따로 제작한 이중구조인 금동사리항아리를 분리해 사리항아리 안에서 작은 금제사리항아리를 꺼냈다”며 “이 금제사리항아리는 금동사리항아리 발견 당시 X선 촬영으로 존재만 확인됐던 것”이라고 밝혔다. 1월 미륵사 터에서는 미륵사가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의 딸인 백제 왕후가 창건한 사실이 담긴 금제사리봉안기(記) 등 국보급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작은 금제사리항아리는 어자(魚子·물고기 알)무늬나 연주(聯珠·구슬)무늬로 불리는 동글동글한 ..

안중근 의사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일본의 보호으로 전락한 상태였다. 이에 조선 보호론 실현의 주역인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함으로써 보호국화의 국제법적 불법성을 널리 알리고자 했다. 또한 일부 한국인들의 강력한 항일 투지와 의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는 없었기에 일본은 예정대로 1910년 한일합방조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했다. 한편 일본에서는 의거 후 일제강점기에 들어갔음에도 안중근 연구회가 만들어졌다. 특히 놀라운 건 뤼순 감옥의 간수들 중 그의 전담 간수이던 지바 도시치 등 여럿이 그의 인품에 감화되어 스스로 일본인임이 부끄럽다고 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일본 내부에서 전쟁보단 협상을 중시하던 소수의 온건파 인물이 사살됨에 따라 팽창주의를 내세우는 강경파들의 입..

대한민국 태극기의 변천사

▣▣,우리나라 태극기 변한 모습 ▲ 마건충(馬建忠)이 제안한 태극도. 청(淸)나라 사신 마건충이 반홍, 반흑의 태극에 8쾌를 그려서 조선(朝鮮)의 국기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고종(高宗)이 크게 노하여 새로운 태극기를 창안 하였다. ▲조선왕조 말기 정치인이었던 박정양(1841~1904) 이 소장하던 태극기 1884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그후 1900년 이화학당 4대 총장 쥬디씨가 똑같이 그려 사용하였고, 현재 스미스 소니언(Smith sonian)에서구입,소장(所藏)중이다. 현존하는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된 태극기이다 ▲1886년 외교 고문이었던 데니시(Deny, Owen N)가 재임시 고종황제(高宗皇帝)로부터 하사(下賜)받은 태극기이다. 데니씨는 당시 조선왕조를 간섭하던 청(淸)나라를 신랄하게 ..

추억의 아내양들

1980년 초의 시내버스 승객과 버스 여차장의 근무장면 명동에서 출발해 서울역과 신촌을 거쳐 김포공항을 오가던 김포교통 소속 버스의 모습이 보인다 1980년대 말까지 존재했던 직업이다 1982년 시민자율버스 운행제의 실시와 더불어 정류장 자동 안내방송과 하차벨 자동문 등의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1983년부턱 안내양은 사양 길로 걷기 시작했고 대통령이 정하는 여객 자동차 운송 사업자는 교통부 정하는 바에 따라 안내원을 승무하게 하여야 한다는 법 존문이 삭제되면서 1990년부턱 모든 지역에서 안내양 제도가 폐지 되었다 마지막 안내양은 서울 김포교통에 있던 38명이라고 한다 버스 안내양의 역할은 버스에서 승객에게 하차지를 안내하고 버스 요금을 받으며 출입문을 역고 닫는 역할이었다 1960년~ 1970년대..

에밀레 종

성덕대왕 신종 또는 에밀레종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제작된 동종으로 성덕왕을 기리고자 경덕왕시기 주조를 시작하여 손자인 해공왕 7년 771년 12월14일에 완성된 대종이다 1962년 12월20일에 국보 29호로 지정 되었다 전근대에 만들어 국내에 실물이 현존하는 범종 중 가장 크며 그 높이는 3.75 m 지름은 2.27m 두께는 11~25cm이다 무게는 1997년 국립 경주박물관에서 정밀 측정한 결과 18.9톤으로 확인 되었다 20세기 전까지한국 최대의 종었지만 2008년에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평화의 댐에 위치한 세계 평화의 공원에 세계 평화종의 종이 설치되면서 밀렸다 그러나 여전히 성덕대왕 신종이 한국을 대표하는 범종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하네요 범종으로는 현재 남아 있는 범종 중 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