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발명가 조지 스티븐슨
조지 스티븐슨 [George Stephenson, 1781 ~ 1848]
영국 증기기관차 발명가. 노섬벌랜드 출생.
광부 아들로 집안이 가난하여 학교에 가지 못하였다.
8세 때에 광산에서 일하고, 14세 때에 화부 견습, 17세에 뉴코멘 대기압기관(大氣壓機關)의 기관사가 되었으며, 18세 때 비로소 야학에서 학교교육을 받았다.
21세에 결혼하여 1803년, 후에 기술자로서 좋은 협력자가 된 아들 로버트를 낳았다.
이 무렵 이미 킬링워스광산의 수석기사가 되었고, 1805년 무렵에는 <기계박사>로 이름을 떨쳤다.
12년에는 킬링워스광산의 기관장으로 초빙되었다.
그 무렵 탄광에서는 석탄을 갱내에서 반출하는 방법으로 말에 트럭을 달아 끌게 했는데, 수송수단을 기계화하는 것이 큰 과제였다.
이 무렵 증기기관을 이용한 수송방법을 연구하는 발명가가 많이 있었는데 증기자동차를 생각한 프랑스의 N.C. 퀴뇨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스티븐슨은 13년 증기기관차를 제작하고 이듬해인 14년 7월 25일 시운전에 성공하였다.
제1호 증기기관차는 그 뒤 개량을 거듭하여 25년까지 16대의 증기기관차가 제작되었다. 1821년 스톡턴-달링턴 사이 21㎞의 철도개통공사가 시작되자 이 공사의 기사장(技師長)이 되었다.
23년에는 2명의 공동출자자와 함께 세계 최초의 기관차공장을 설립하였으며, 이 공장에서 제작한 기관차 로커모션호로 25년 9월 27일 철도가 개통되었다.
최초의 열차는 38대의 차량을 시속 20∼26㎞로 운행하였으며 이것은 마차를 대신한 육상수송의 개막이었다.
그리고 이 무렵 맨체스터-리버풀 사이 45㎞에도 철도가 건설되어 이곳에서 사용할 증기기관차 선발대회가 개최되었다.
그는 아들 로버트와 함께 제작한 출력 13마력의 로켓호를 출품하여 우승하였고, 그 뒤 몇 년 만에 이 철도의 건설허가를 얻었다.
그 무렵에 <고압증기는 생명과 건강에 해로우므로 정부는 금지령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1830년 맨체스터-리버풀 사이의 철도가 건설되면서 미국·프랑스·독일 등에 이 새로운 육상수송수단이 확산되었고, 그는 그 뒤에도 벨기에·에스파냐 등의 철도건설에 종사하였다.
47년에는 철도기술자들이 중심이 되어 버밍엄에 세계 최초로 기계학회가 창립되어 그 초대 회장이 되었으나 이듬해 체스터필드에서 죽었다.
◈기관차의 역사
실용적인 전기기관차는최초의 디젤기관차는 1912년에 운행되었으며, 제2차세계대전(1939∼1945) 이후부터 디젤기관차가 널리 이용되어 왔다.
우리 나라에서는 1896년 제물포에서 노량진까지의 거리에 기차가 세워진 것이 최초입니다.
그리고 이 이후로부터 일제가 식민수탈을 위하여 경부선 등을 놓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경인선을 부설함으로써 1899년 증기기관차가 처음으로 운행되었다.그리고 6·25전쟁 때 미군이 전쟁물자 수송용디젤기관차를 들여와 처음 운행했다.
1967년부터는 증기기관차 대신 디젤기관차와 전기기관차가 널리 운행되고 있다.1879년 최초로 만들어졌고,1880년에는 토머스에디슨이 자신이 만든 전기기관차를 시험했다. 오늘날의 지하철에는 전기기관차만 사용한다.
로켓호는 송풍 파이프와 관이 많은 보일러를 사용한 증기기관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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