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왕봉 힘 빌려 일제 물리치길 갈망하는 글
◈지리산 천왕봉 바로 아래 '광복 염원' 392자 바위글씨 확인
이 결과 글은 구한말 문인 묵희(墨熙 1875~1942)가 지었고, 바위에 새겨진 것은 1924년이라는 점이 확인됐다. 경남 고성군 출생 묵희 선생은 경남 진주시 일대 전답을 사들여 독립군 양병을 꾀하는 한편, 상해 임시정부의 연락책으로 활약한 것으로 전해졌다.
글을 번역한 최석기 한국선비문화연구원 부원장은 "천왕(天王)을 상징하는 지리산 천왕봉의 위엄을 빌어 오랑캐(일제)를 물리쳐 밝고 빛나는 세상이 오기를 갈망하면서,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비분강개한 어조로 토로한 것이 석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해발 1915m) 바로 아래 바위에 100년 전 일제강점기를 물리치겠다는 의지를 담은 글씨가 새겨진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13일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최근 천왕봉 바로 아래 바위에서 392자의 석각(石刻·바위글씨)이 확인됐다.
이 석각은 일제강점기 지리산에서 의병을 조직하고 활동했다고 알려진 권상순 의병장 후손이 2021년 9월 발견하고 작년 11월 국립공원공단에 조사를 의뢰하면서 존재가 알려졌다.
공단이 올해 4~6월 기초조사를 벌인 결과 석각은 폭과 높이가 각각 4.2m와 1.9m였으며 글자 수는 392자에 달했다.
국립공원 내 확인된 근대 이전 석각 194개 중 글자가 가장 많고 제일 높은 곳(해발고도 1천900m대)에 있는 석각이라고 공단은 설명했다.
한국선비문화연구원 최석기 부원장과 한학자 이창호 선생이 판독한 결과 이번에 발견된 석각은 1924년 문인 묵희가 글을 짓고 권륜이 글씨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
묵희는 글 말미에 자신을 '나라 잃은 유민'이라고 표현했다.
최 부원장에 따르면 글은 공자의 춘추에 나오는 '대일통'(천왕의 예악문물이 널리 퍼지며 천하가 하나로 통일된 세상)을 주제로 천왕을 상징하는 천왕봉의 위엄을 빌려 일제라는 오랑캐를 물리치고 밝고 빛나는 세상이 오길 갈망하는 내용이다.
특히 동아시아 역대 왕조 흥망성쇠를 간추려 제시하면서 일제강점기도 반드시 끝날 것이라고 희망을 드러낸 점이 눈길을 끈다.
최 부원장은 "나라를 뺏긴 울분을 비분강개한 어조로 토로한 것이 석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면서 "구한말 유학자들이 천왕봉을 천왕으로 여기며 '성인이 다스리는 문명국'이라는 자존의식을 잃지 않으려 했던 것이 확인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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