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풍경

조선의 마지막 삼강 주막

이모이모 2023. 11. 1. 15:34

▣▣,조선의 마지막  삼강 주막'

벌써 100여년이 흘렀구려. 세월은 참말 무상한 것 같으이. 이곳은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자리잡은 ‘삼강주막’이라오. 낙동강·내성천·금천의 3개 강물이 합치는 곳이라 해서 그렇게들 불렀지. 주막이 생긴 것은 1900년대 초반. 정확한 날짜는 알지 못한다오. 그저 학자들이 “낙동강 700리 길을 통틀어 아직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조선시대 전통 주막”이라며 그렇게 추정할 뿐이라오.
주막 한 켠엔 멋들어지게 늘어선 아름드리 나무가 한 그루 있소. 사람들이 정월 보름날 제사를 지냈던 이 나무 수령이 200년이라니까, 그간 주막이 겪은 풍상을 어림할 수 있을 거요.

조선의 마지막 주막’을 지켜온 이는 유옥련(兪玉蓮) 할매라오. 1917년에 태어난 할매는 꽃다운 나이인 열아홉에 주모로 들어앉아 2005년 10월 90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약 70년간 이 주막을 지켜왔소. 마을 노인은 “할매의 고향은 옆 동네 우망리”라면서 “원래 남의 집 일을 봐 주다가 네 살 위인 뱃사공 배소봉(裵小鳳)씨와 1932년 혼인해 주막을 맡았다”고 하더군. 그러니까 이 주막은 할매가 맡기 훨씬 전부터 이곳에 있었다는 얘기가 되는 거라오.

옛날엔 정말 좋았다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삼강리’는 상인이 흥청대는 요충지였소. 이곳은 대구와 서울을 잇는 단거리 뱃길로, 낙동강을 오르내리는 소금배와 집산된 농산물은 죄다 이곳으로 모여들었다오. 마을과 주막은 상인, 뱃사람, 나들이객, 시인묵객으로 늘 붐비곤 했지. 한창일 땐 소 6마리가 들어가는 커다란 배가 오가곤 했다니까, 나루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거요.
할매는 글도, 숫자도 알지 못했다오. 그래서 한 잔을 외상하면 담벼락에 짧은 금을 긋고, 한 주전자를 외상하면 긴 금을 세로로 그어 놓았다오. 그러다 외상값을 죄다 갚으면 옆으로 길게 금을 그어 외상을 지웠지. 말 그대로 외상을 ‘그은’ 거라오. 주막 주방 옆 담벼락엔 할매가 그어둔 외상 금이 여전히 남아 있다오.

비록 술장사를 했지만 할매는 단아하고 정직했다오. 마을 노인은 “인정 있고 인심 후했던 주모”로 할매를 기억한다오. 할매는 옆 동네 술도가에서 탁주를 받아다 팔았소. 당시엔 안주래봐야 어쩌다 멸치나 콩자반이 곁들여질 뿐, 평소엔 소금이 대부분이었다오. 동네 노인 정수흠(69)씨는 “돈이 없을 땐 쌀 같은 곡물을 들고 와서 술을 받아먹곤 했다”며 “어쩌다 돈이 생겨 외상을 그으면 한두 잔 더 주기도 하고, 돈이 떨어지면 또 외상을 먹기도 하고 그랬다”고 하더군. 20~3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대여섯 달에 한 번, 어떤 땐 1년에 한 번 꼴로 외상을 갚았다오. 그러다 보니 미처 못 갚은 외상도 많았는지, 주막 흙벽엔 채 지워지지 않은 수십 개의 금이 남아 있다오.

할매의 삶은 고단했다오. 강변에 있긴 했지만 주막엔 의외로 먹을 물이 귀했소. 그래서 할매는 매일 마을로 가서, 동이에 우물물을 받아 머리에 이고 왔소. 50여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부터 매일을 그렇게 5남매를 키웠으니, 고단할 만도 했을 거요. 할매는 10여년 전부터 막걸리 대신 소주나 과자를 주로 팔았는데, 소주 한 병에 1000원을 받았다니 수입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오. 전국의 대폿집을 순례해 ‘사람아 바람아, 그냥 갈 수 없잖아’란 책을 쓴 화가 사석원씨는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은 주모”로 할매를 기억한다오. 사씨는 할매가 작고하기 2년 전인 2003년 11월 ‘삼강주막’을 찾았는데, 그게 그만 마지막이 되고 말았소.

세월이 흐른 지금은 옛날 같은 정취를 느끼기 힘들다오. 마을을 가로질러 1970년대에 도로가 뚫리고, 현대식 다리인 삼강교가 마을과 주막 사이를 가로막고 들어선 바람에, 강 따라 소담하게 자리잡은 동네 모습이 훼손되고 말았소.
동네 노인은 “다리가 뚫리던 2004년 4월, 평생 눈물을 보이지 않던 할매가 봉당마루에 앉아 쓸쓸히 눈물 훔치는 모습을 봤다”고 하더이다. 주막을 감돌며 시원하게 흘러가는 낙동강 허리를, 다리가 동강 막아버렸으니…. 도로가 생기면서 인적도 끊겨, 주막을 찾는 사람도 하나 둘씩 사라지고 말았다오.

주막은 원래 짚단에 진흙을 섞어 지었는데, 1934년 ‘갑술홍수’ 때 물에 잠기면서 한 번 보수를 했다오. 짚단을 얹어 놓은 원래 지붕도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1년 슬레이트로 바뀌어 버렸소. 하지만 옛 모습이 아주 사라진 건 아니라오. 진흙을 바른 담장, 구들장, 아궁이도 여전하고 할매가 쓰던 토끼굴 같은 부엌도 여전하니 말이오.
경상북도는 이 주막이 가진 지역 문화·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판단해 2005년 12월 26일, 이곳을 민속자료 134호로 지정했소. 무려 12억원을 들여 이곳을 문화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라니, 옛 정취가 살아나길 기대해 봄직할 거요.

 

주모   할머니  유옥련씨

이 그림은 작가의 미상

조선의 마지막 주막 '삼강주막'

주모  유옥련 할머니 생전의 모습

안주가  깔끔하네요

 <낙동강 길 1300여 리 '조선의 마지막 주막'이라 불리는 삼강주막의 모습>

▲ <삼강주막 주모 유옥련(1917~2005) 할매의 생전 모습>

▲2004년 겨울 어느 날 우리들은 삼강주막을 찾았지요...!

 

그때에는 유옥련 할머니가 어느 노인 한분과 막걸리를 나누고 있었고

줄담배를 피우시며, "젊을 때 길다고 느낀 인생이 忍苦의 세월속에 짧음을 느꼈어..."

우리들은 마지막 주모할머니와 그 당시 대화에 옛날을 거슬러 올라 생각에 잠겼고

내 주머니에서 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2만원을 드리며 오래사시라고 한게 마지막이었군요

그 당시 2만원을 드리는것을 본 집사람이 만원만 드려도 되는데 2만원까지...!!! 하며

내게보낸 곱지못한 눈빛이 생각나며, 주모할머니는 2년전 타계하셨다고 하니

고인의 명복을 빌며, 찾았던 그때가 더욱 생각에 잠기게 하네요...!!!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곳 없구나...

얼굴 주름속에 50여년의 회한의 세월이 담긴 유옥연 할머니와 함께...(2004년 1월)

▲ 2007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주모할머니가 없는 이곳 삼강주막은 쓸쓸히 과객들로 분주했던

발자취만 남긴채 온기없는 모습으로 쓸쓸히 옛 주인을 그리워하고 있는듯 합니다 

하지만 아쉬운 건 있소. 자식들이 장례를 치르면서 할매가 쓰던 그릇이니 반짇고리, 옷가지, 이불 등을 죄다 태워버렸다오. 하지만 너무 무상해 하진 마시라오. 삶이란 게 우리 같은 질그릇의 삶이건 사람의 삶이건, 세상에 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법이니까 말이오. 누가 또 알겠수? 문화공원이 조성되면 누군가 흙을 빚어 할매가 쓰던 우리네 그릇들을 다시 복원해줄지 말이오.

▲푸른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곳없구나...!
회화나무만이 할머니의 忍苦의 哀歡을 알고 있으리라...
나무만이 마지막 주막속의 할머니의 魂을 지키고...(2007년 8월촬영)

 

 

삼강주막 - 낙동강 700리에 단 하나 남아 있는 삼강주막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낙동강이 내성천과 금천이 만나는 이곳에 1900년쯤에서 부터 있어오면서 서울로 오가는

길손 (선비,보부장사,소장사등등 모든 물자도 함께.....)을 하루에 20~30회를  왕복하며

사람과 짐을 나르던 나루터옆의 주막(객잔), 2005년 90세로 작고하신 마지막 주모로 알려진 

유옥련 할머니 그 분이 돌아가신후 페쇄직전의 주막을 마을 사람들이 앞장써서

관할행정기관인 예천군청에 보존할수 있도록 노력하여 2007.년 1억5000만원의 예산으로 재정비 복원하였다.

사진에 보이는 다리가 낙동강을 가로지르며 생기고 부터 나루터가 기능을 잃음과 동시에 주막도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복원하기전의 삼강주막 20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수많은 희노애락을 간직한 회나무가

지금도 싱싱하게 살아가고 있다.(위 사진은 빌려온것임

▲새롭게 옛모습 그대로 복원하여 새로이 마을 주민중에 경쟁을 거쳐 새주인인 주모를 모셔서 옛 정취를 맛보게 하고 있다.

새주모 선발의 조건 :막걸리를 직접빗어 옛맛을 그대로 잘 살려야하고.주막을 비우지 않아야함. (새로운 주모님은 이 마을에 계시는 권태순 (70세) 할머니 이시다)

옛 모습을 찾을려고 외벽은 흙으로 덧칠하고 지붕은 지릅대와 집으로 이엉(?)을 엮어 초가로 복원하여 장독도 있었다

▲요즈음 말로 주방 부엌 옛날 사투리 정지 삐그덕 거리는 문짝이 사방으로 나 있다.

왜 이렇게 부엌에 딸린 문짝이 많은지 ~

수야 여 와바라,하이고 요건 통시네 가만히 들어다 보니

큰 단지를 하나 묻어  놓았네 우리들 클직에 이렇게 하고 살았다 아이가 

 이 큰 나무는 200년을 넘게 살아온 회나무 인데

삼강주막 복원사업에 사용하던 재료들 (지릅데기. 볏짚).

구경 다 해시마 인자 한잔해야제 주모~여기 막걸리 하고 안주 ~?

할머니 여기 막걸리 하고 안주 한접시 주이소 (막걸리한되, 두부, 메밀묵, 배추전까정

12,000원) 친구와 둘이서 막걸리 반되 주문으로 10,000원 으로 배가 벌떡,

배도 부르고하이 회룡포나 찾아가보자~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