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연애인 세개 (210)
뱀사골 다시내
이휘향 남편 페암으로 별세 지난해 9월 30일 탤런트 이휘향의 남편인 고 김두조씨가 분당 서울대학병원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64세. 그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다간 고인이지만, 떠나는 길은 너무나 조용했다. “가능한 조용히 장례를 치러달라”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 장례식이 무척 간소하게 진행된다. 슬픔은 고스란히 남겨진 이휘향의 몫이었다. 저 세상으로 떠난 남편의 뜻에 따라 그녀 역시 아픈 가슴을 드러내놓고 내색하지 못한 채 혼자서 스스로의 가슴에 슬픔을 묻어야 했다. 이런 이유로 김씨의 죽음은 49재까지 끝난 뒤인 11월 말에야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지게 됐다. 중견 탤런트 이휘향의 남편 김두조씨가 지난해 9월 30일 폐암으로 사망했다. 지병으로 별세한 김씨는 자신의 죽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배우 이얼 식도암 별세 식도암 투병 중이었던 배우 이얼(이용덕·사진)이 끝내 세상을 떠났다. 향년 58세. 2022년 5월26일 소속사 스타잇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이얼은 이날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지난해 드라마 ‘보이스 시즌4’ 종방 후 식도암으로 투병했다. 이얼은 1983년 연극배우로 데뷔했다. 1993년 영화 ‘짧은 여행의 끝’(감독 유건조)으로 상업매체 연기를 시작했다. 이후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사생결단’, ‘화려한 휴가’, ‘82년생 김지영’. ‘경관의 피’와 드라마 ‘라이브’, ‘스토브리그’, ‘사이코지만 괜찮아’, ‘보이스4’ 등에 출연했다. 빈소는 서울 중랑구 신내동 서울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했다. 발인은 28일이며,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이다.
▣▣ 성우 양지운 파킨스병 은퇴 데뷔 49년차의 원로 성우이며, 성우 배한성와 박일과 단짝이자 성우계의 트로이카로 손꼽히는 외화 전성시대를 풍미했던 성우 중 한 명. 언제나 흐트러짐없는 모습과 성실함을 보여줘 녹음이 꼭두새벽이든 한밤중이든 단정한 차림에 신문을 옆에 끼고 녹음실에 도착해 준비하고 있어 같이 녹음하는 후배 성우들에게는 귀감이 되고 있다.[4] 경상남도 통영 출신으로, 후배 김희선의 책에 따르면 데뷔 당시에 무척 사투리가 심해서 5년 동안 신문 읽기나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봐 가면서 표준말을 열심히 익혀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했다. 양지운 본인도 인터뷰에서 사투리 때문에 성우를 하기에는 핸디캡이 너무 많았다고 토로했다. 인터뷰를 보면, 평상시에도 성우 톤이 묻어나는 배한성, 박일과 달리 양지운의..
▣▣ 배우 김성원님 암투병 별세 김성원씨 1936년 1월 2일~2022년 8월 8일)은 대한민국의 배우, 성우, 연극배우이다. 평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원주시에서 보냈고 원주농고, 서라벌예술초급대학을 졸업한 그는 1954년 연극 배우로 데뷔하였다. 1956년 CBS 공채 2기 성우로 정식 데뷔하였고 1970년 30대 중반부터 50년 이상 당뇨병을 앓으며 걷기 운동, 식단 관리 등을 통해 꾸준히 건강 관리를 해왔으나, 2022년 초 방광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 8월 8일 숨졌다. 고인의 명복을 빔니다
▣▣ 코미디언 남철 별세 1972년 TBC의 코미디언으로 데뷔하였으며 단짝 코미디언으로 잘 알려진 동료 코미디언 남성남과 콤비를 이루면서 유명해지게 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도 KBS 2TV 폭소클럽, SBS 웃찾사에도 출연하였다가 언젠가부터 당뇨병과 고혈압으로 지병을 앓으며 실신하여 병원에 입원하였다가 2013년 6월 21일 향년 80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남철의 부고(訃告)를 접한 콤비 남성남은 자신보다 연하였던(남성남은 1931년생.) 남철이 먼저 떠났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오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2년 후 남성남도 건강악화로 세상을 떠나면서 남철의 곁으로 가게 되었다.
한때 주연배우를 희망하여 연출자에게 부탁을 했으나, 외모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다만, 이 과정에서 주연배우들이 감당해야 하는 대본과 연기 과정을 절감, 과감히 생각을 바꾸어 정력적인 배우 활동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1980년대부터는 전두환 군부독재의 3S정책에 항거하여 어용영화는 사절이라며 밤무대에 출연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동일 세대의 배우들은 이걸 도피성 행위로 간주했고, 이 때문에 배우로서 자격이 없다는 명분하에 영화인협회에서 사실상의 제명에 준하는 취급을 받게 된다. 그나마 1986년에 출연한 깜보와 90년에 개봉된 남부군이 인지도가 있지만, 지난날처럼 영화계 활동이 활발하지는 않았으며, 간간히 주류 영화인들의 작품에 출연하는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본인이 연..